한여름에는 수(水)가 조후 용신이다. 그리고 한 겨울에는 화(火)가 조후 용신이다. 그래서 한여름과 한 겨울의 특성이 강한 사람들의 사주 풀이는 그나마 편하다. 명확하기 때문이다. 조후 용신은 모든 용신에 우선한다. 왜냐하면 생명체가 자라기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론을 접하면서 수없이도 공부하여 당연히 그렇다고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조후 용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22년의 여름은 어느해 보다 덥다. 그리고 그 기간이 길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뭉뚱그려서 얘기한다. 그렇게 말하는 게 복잡하지 않고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은 분명히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세상의 기술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자연의 섭리를 그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 자연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놓치고 살고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현상을 연구하고 있다. 명리학 또한 그중의 한 분야가 아닌가 싶다. 지난주 무더위와 맞서 싸워볼까 해서 산을 찾았다. 수도권과 인접해 있는 국립공원인 치악산. 전엔 자주 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뜸해졌다. 주차비와 입장료를 이중으로 받는 것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멀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엔 무더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무료하게 에어컨만 붙들고 살기가 답답하여 땀을 흘려보고자 길을 나선것이다. 새말 IC를 통해 구룡사 방향으로 진입하였다. 입구부터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꼈다. 자연이 주는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다. 치악산의 웅장함과 그윽함이 역시나 국립공원 다웠다. 주차장도 잘 정비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주차비도 징수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입장료는 3천 원이다. 구룡사 사찰 관람료이다. 요즘 TV 드라마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사찰을 관람하지 않는데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그러나 사찰은 우리 문화유산이고 종교적 이유와 관계없이 보전되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선 유지비용을 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무더위와 싸워보려고 산행을 결심했는데 계곡은 에어컨 저리가라 할 만큼 시원하다. 힘차게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와 몇백 년이 지났는지 모르는 나무들은 느긋하게 사람들의 이동을 지켜보고 있다. 아름들이 나무는 곧게도 자랐다. 시원한 물이 흐르고 숲 위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화(火)와 수(水)가 적당히 있으니 생명체인 목(木)은 평화롭고 곱게 자란다. 이것이 바로 명리학의 원리가 아닌가 싶다. 한여름에 수(水)가 조후 용신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계곡을 힘차게 흐르는 물은 무더위에 지쳐가는 나무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미리 정해놓은 목적지를 향해 앞만보고 걸었다. 그러나 함께 동행한 아내는 시원한 계곡을 쳐다보며 시원함의 끝이 어딘가에 감상하고, 주변의 나무는 어떻게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지 열심히 보느라 저 멀리 뒤처져서 걷고 있다. 나는 그런 아내가 답답해서 한마디 한다. '목적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 이러면 너무 늦는다고' 그러자 아내가 말한다. '목적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주변에 아름다움을 안 보려면 왜 산에 왔느냐고' 순간 멍해졌다. 나는 늘 이런식으로 살아왔다. 아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저 멀리 목적지에 행복이 있다. 그러니 그곳까지 열심히 달려가야만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치악산은 입구부터 세렴폭포까지 어디 한 곳이라도 안 이쁜 곳이 없다. 내가 정해놓은 목적지인 세렴폭포만이 최선이 아니다. 중간중간 계곡이나 바위, 나무 등 볼 만한 것이 너무 많다. 그동안 나는 이런 것을 아예 보지 못한 채 목적지로 정한 세렴폭포만 기억을 한다. 왜냐하면 나의 목적지는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삶의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미래 어느 순간에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미래가 다가오면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늘 미래에만 존재했다. 그나마 희망이 있다는 명분 아래 말이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왔다. 치악산 산행을 통해 깨달았다. 미래에 있는 행복을 쫒다보면 그 끝은 삶이 끝나는 순간이 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다면 임종을 앞둔 사람들은 행복을 느껴야만 한다. 그 끝에 서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임종의 순간 사람들은 과거의 추억을 생각한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은 미래를 보고 끝자락에 서 있는 사람들은 과거를 본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치악산 산행에서 아내가 느긋하게 지켜보고 느끼던 지금 그 순간의 현장이 행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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