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기독교 신자다.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예수그리스도를 가슴에 품은 지는 20년이 넘었다. 물론 매주 교회에 나가는 것 이외에 새벽기도나 금요기도 등을 다하지는 못한다. 가끔 주일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그런 기독교인이다. 그런 내가 우연한 기회에 명리학을 만났다. 아니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심심해서 굳이 찾아가지는 않지만 지나가다가 사주팔자를 봐주는 곳에 몇 번 들른 적은 있지만 그것도 재미 삼아 듣는 등 마는 등 그렇게 만난 적은 있다. 그러나 운명적인 만남은 우연찮게 찾아왔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하고 몇 번을 장벽에 부딪혀 포기하려고 잠시 놓았다가 다시 다잡은 세월이 벌써 몇 년이 지났다. 당구 마니아들이 잠자리에 누었을 때 당구공과 당구대가 보이는 정도가 된듯하다. 가끔 사주에 대해 얘기하다 보면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이라는 것 때문이다. 여기서 의문이 들었다. 명리학을 공부하며 본인의 특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운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도구가 사주명리인데 왜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줄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 살아가게 만든 그 역사에 사주명리는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알기 쉽게 풀이한 기호이자 글자인데 왜 싫어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과 명리학에 대해 좀 더 깊이 연구하고 공론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 접한 책이 이번에 소개할 '기독교, 명리학과 만나다'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이 이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하고 있었다는 것에 반가웠다. 간단하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은이는 이남호 신부이다. 신학과 상담심리를 전공했으며 상담심리 과정에서 명리학을 만난 것 같다. 책에서는 기독교와 명리학의 자연관, 인간관, 사회관, 운명관에 대해 비교한다. 각각의 가치와 증거들을 하나하나 파 헤치며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개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운명론일 것이다. 그 운명론이 가장 서로 밀접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정론을 주장한다. 예정론은 신약시대 사도 바울의 서신을 통해 자주 드러난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쓴 서신을 통해 '로마서 8장 29~30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또한, '로마서 9장 16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 안 받는 것은 인간의 의지나 노력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라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의지와 뜻에 의해 태어나고 살아간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론이다. 그렇다면 명리학은 어떨까? 명리학은 운명론을 말한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우주로부터 받은 기에 의해 사주팔자가 만들어지고 운에 의해 살아간다라는 것이 명리학의 운명론이다. 이 운명론은 음양오행의 생극제화에 의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시각화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주 상세하고 명확하게 운을 말하지는 않는다. 방향과 기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이 운명론이다. 이를 너무 정확하게 맞춘다고 좋아하는 것은 명리학의 관점이 아니라 점성학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정론과 명리학에서 말하는 운명론은 다른 것일까? 아님 같은 것일까? 이 책에서 필자는 결론적으로 말하고 있다. 기독교의 예정론과 명리학의 운명론은 기독교 교리인 '섭리'를 사용한다. 기독교 학자 칼빈은 섭리를 "첫째로 하나님의 섭리는 과거에 관한 것임은 물론 미래에 관한 것이기도 하며, 둘째로 모든 일을 결정짓는 원리로써 매개체를 통해 역사하고, 그다음으로는 인류를 보살피는 것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으며 섭리에는 특별섭리와 일반섭리가 있다고 말한다. 특별섭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을 직접적, 개별적으로 돌보는 의지이다. 바다와 해를 멈추며 처녀를 잉태하게 하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것과 같은 기적은 이러한 특별섭리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섭리는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할 때 부과한 법칙, 곧 우리가 보통 자연법칙이라고 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태어날 때 우주의 기를 받아 사주팔자가 만들어지고 운명이 정해진다는 것이 바로 자연법칙인 우주의 섭리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것과 맹락을 같이한다. 따라서 칼빈이 말한 일반섭리는 명리학과 같은 의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에는 특별섭리와 일반섭리가 있는데 특별섭리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삼위일체 사상이고 일반섭리는 명리학의 이론과 같다는 말이다. 즉, 명리학도 하나님의 섭리 중 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독교와 명리학의 사이가 멀어졌을까? 서양 문화인 기독교가 선교될 때는 토착 문화와 많은 대결을 이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전해질 때는 서양 문물에 대한 급진적인 믿음과 희망에 의해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졌다. 빨리빨리의 문화, 새로운 것에 대한 빠른 적응성 등 우리나라 민족성과도 관련이 있지 않나 싶다. 여기에 일제강점기도 한 역할을 한다. 일본은 우리 우수한 문화를 억압하고 말살했다. 특히 명리학을 귀신세계의 한 유물인양 모략하여 음지로 몰아갔다. 현시대 많은 젊은이들이 MBTI와 사주에 빠져있다. 아니 즐기고 있다. 그것은 명리학을 양지의 세계로 나올 수 있게 하는 힘이 된다. 이럴 때 명리학을 알고 명리학을 연구한 사람들이 더욱더 적극적으로 이론을 전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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